[베를린에서 백두산으로 - 62] "백두산 통일휴게소 (하)" (매경프리미엄, 2022.09.05)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322회 작성일 22-10-06 16:19본문
[베를린에서 백두산으로 - 62] "백두산 통일휴게소 (하)" (매경프리미엄, 2022.09.05)
https://www.mk.co.kr/premium/special-report/view/2022/09/32393/
■ 독일식 통일이 왜 중요한가?
독일 통일 사례를 국내, 동서독 관계, 국제적 시각에서 열띠게 강의하면 참석자들은 진지하게 들으며 끄덕인다. 그러나 토론 자리에서 열에 일곱은 "그런데 독일과 한국 상황은 다릅니다, 독일 통일은 우리의 모델이 될 수 없습니다" 하고 단호히 말한다. 쏟았던 열정이 차갑게 식는다. "그러면 선생님은 어떤 통일방안을 생각하고 계신가요?"라고 물으면 상정하고 있는 뚜렷한 통일구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진> ▲ 통일 강연을 하는 필자
당연히 독일은 한반도와 매우 다르다. 독일은 전쟁을 일으킨 죄로 전승 4국 미국·영국·프랑스·소련에 의해 국제법적으로 분단되었다. 독일 통일은 전승 4국의 손에 달려 있었다. 우리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고, 국제법에 의해 분단되지도 않았다. 독일은 전후에 민족끼리 전쟁하지 않았고, 분단 시기에도 상호간 접촉과 교류, 왕래와 이주가 가능했다. 정치·경제적, 사회·문화·역사적 차이도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헌법 4조에 명확히 규정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을 받아들인다면, 독일통일사례를 본받아야 한다. 동독 주민이 자발적 의지와 결단으로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freiheitliche demokratische Grundordnung)'인 서독 체제로 '편입(Beitritt)'하여 '평화적으로' 하나의 독일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 동서독은 우리의 공식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상정하는 3단계 통일(남북화해협력 → 남북연합 → 통일) 가운데 2단계(연합)와 3단계(통일)를 불과 7개월(1990년 3월 18일 동독의 마지막 총선으로 구성된 마지막 정부와 서독 정부의 협상 → 10월 3일 통일) 만에 속전속결로 달성했다. 서독 정부는 빛나는 통일외교를 통해 전승 4국의 동의도 이끌었다.
우리와 독일 간에 차이가 아무리 크더라도, 역사가 완전히 동일하게 반복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북한이 독일식 통일을 거부하고 많은 대비책을 강구했다 하더라도 독일통일은 우리의 헌법과 공식통일방안에 준한다. 독일통일사례를 연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이 우리의 통일에 어떠한 법적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하더라도 그들은 우리의 분단과 통일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엄연한 현실이다. 서독의 통일외교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 통일의 원동력은 누구인가?
자유민주적 체제로 평화통일의 길을 걸은 동독 주민과 마찬가지로 북한 주민이 한반도 통일의 주동력이다. 우리가 아무리 통일을 소망하고 외쳐도, 우리 사회를 국민소득 1인당 100만달러의 지상낙원으로 만들어도, 북한 주민이 우리와 함께하기를, 우리 체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통일은 불가능하다.
우리 사회를 자유와 민주, 인권과 복지가 더욱 높아지는 체제로 만들면서, 함께하고자 하는 우리의 마음을 북한 주민에게 전하는 '통일 준비'가 우리의 과제이다. '통일'은 북한 주민이 눈과 귀를 열어 우리 사회를 보고 듣고 느끼고, 그들 체제의 실상을 깨달아, 우리와 함께하려고 우리 체제를 받아들일 때 이루어진다.
이를 위해 북한 주민에게 대한민국이란 희망을 심어주고, 동포로서 우리의 마음을 전해야 한다. 식량난에 고통을 겪는 북한 주민에게 지원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지원된 식량을 북한 주민이 아니라 인민군이 먹을 것이다, 권력층이 빼돌릴 것이라 우려하여 지원을 반대하는 시각이 있다.
한반도 평화통일의 원동력은 북한 주민이다. 여기에는 인민군과 권력층도 포함된다. 평화통일 달성 이후, 분단 기간 북한에서 비인도적이고 반인권적인 행위를 한 자들은 법정에 세워야 할 것이다. 그 외 대부분의 북한 주민, 인민군과 안전보위성 요원, 권력층도 대한민국은 국민으로서 포용해야 한다. 그들이 총을 내려놓고 우리와 함께하려 결단할 때에만 평화통일이 가능해진다.
식량, 약품 등 인도적 지원을 할 때 이들을 지원 대상에서 배제한다면, 과연 이들이 통일 대열에 동참하겠는가? 평화통일이 가능하겠는가? 북한 주민에게 최대한 도움이 되도록 대북 지원 시에 협상해야겠지만, 인민군·안전보위성·권력층의 마음도 우리가 움직여야 함을, 그들의 결단이 통일 여정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통일 이후 그들에게도 살길이 열려 있다는 사실이 그들을 움직이게 할 것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 통일을 왜 꼭 해야 하는가?
통일이 남의 일인 국민이 나날이 늘고 있다. 국가지도자적 정치인도 평화공존이 통일이라는 식으로, '분단 부역자'적 발언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일자리, 주택 등 경제문제에 신경을 쏟고 통일에는 관심이 없다는 현실을 언론·방송들이 쏟아내니, 통일에 대한 무관심은 더 당연한 듯 여겨지고 확산되고 있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분단 상황에서는 우리가, 젊은이들이 추구하는 삶의 행복, 경제문제가 결단코 해결될 수 없음이 자명해진다. 그럼에도 통일 목소리는 잦아들고, 이상한 사람 취급당하지 않으려고 입을 닫는 것이 현실이다.
토지, 노동력, 자원, 시장, 교통로가 없고, 북한의 도발이 상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국가성장이, 주택문제가, 일자리 문제가 해결되고 정치강국, 군사주권국이 될 수 있을까? 남북 이념 갈등이 우리 사회에 투영된 극단적이고 소모적인 남남갈등을 극복할 수 있을까?
비록 통일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우리의 통합과정은 독일보다 훨씬 어려울 것이다. 동독에 비해 형편없는 북한 경제로 인해 통일비용을 더 많이 쏟아 부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선조들이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듯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던 것처럼, 우리가 통합과정을 극복하면 분단 시기와 비교할 수 없는 경제강국, 정치강국, 군사주권국, 통합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어렵고 힘들다고 피할 문제가 아니다.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 길밖에 없다.
솔직히 말해 통일을 통해 얻는 혜택은 북한 주민보다 남한 주민에게 더 클 것이다. 통합의 어려운 과정을 남북한 주민 모두가 극복해야 하고, 물질적으로 남한 주민이 더 큰 부담을 안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통일을 통해 만들 수 있는 '더 큰 파이'의 '큰 쪽'을 남한 주민이 차지할 것임은 분명하다.
통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이다. 북한 주민에게 다가가서 우리의 마음을, 동포로서의 정을 보여줘야 하는 이유, 이 땅에 온 북한이탈주민을 잘 포용하고 보듬어야 하는 이유는 종국적으로 나의 인간다운 삶을 위함이다. 북한이탈주민은 통일의 전령(傳令)이고, 북한 주민은 통일의 원동력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에 의해 나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다.
자명하고 헌법적인 이 사실들에 공감대를 만드는 일이 왜 이리 힘든지!
신발 끈을 다시 여미고 백두산에서 서울, 통일의 심장으로 향한다.
■ 삶은 늦게 오는 자를 처벌한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이 8월 30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89년 10월 7일 동베를린에서 열린 동독 건국 40주년 행사에 초청을 받은 그는 전날 동베를린 중심가에 위치한 나치 독일 희생자 추모상에 헌화했다. '고르비'를 연호하는 동독 주민에 둘러싸여 운집한 기자들과 인터뷰를 가졌다.
주민들이 헝가리를 거쳐 서독으로 탈출하고, 도시들에서는 자유, 비밀투표, 개혁, 개방을 외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던 상황이었다. 동독 수뇌부는 사회주의 종주국 최고 권력자가 자신들을 지지해줄 것을 간절히 기대했다.
<사진> ▲ 1989년 10월 6일 동베를린에서 인터뷰하는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 사진=picture alliance/dpa
고르바초프는 동독 기자단이 아니라 서독 기자단을 바라보며 확신에 찬 어조로 응대했다. 위험은 삶의 적절한 시기에 반응하지 않는 데 있다. 용기를 가지고 행동한다면 사회를 움직일 수 있다. 용기를 내어 정책을 변화시킨다면 어려움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그것이 정상적인 길이다.
그날 저녁, 서베를린에서 TV로 그의 말을 접하는 순간 그는 나의 영웅이 되었다. 그의 명복을 빈다.
https://www.mk.co.kr/premium/special-report/view/2022/09/32393/
■ 독일식 통일이 왜 중요한가?
독일 통일 사례를 국내, 동서독 관계, 국제적 시각에서 열띠게 강의하면 참석자들은 진지하게 들으며 끄덕인다. 그러나 토론 자리에서 열에 일곱은 "그런데 독일과 한국 상황은 다릅니다, 독일 통일은 우리의 모델이 될 수 없습니다" 하고 단호히 말한다. 쏟았던 열정이 차갑게 식는다. "그러면 선생님은 어떤 통일방안을 생각하고 계신가요?"라고 물으면 상정하고 있는 뚜렷한 통일구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진> ▲ 통일 강연을 하는 필자
당연히 독일은 한반도와 매우 다르다. 독일은 전쟁을 일으킨 죄로 전승 4국 미국·영국·프랑스·소련에 의해 국제법적으로 분단되었다. 독일 통일은 전승 4국의 손에 달려 있었다. 우리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고, 국제법에 의해 분단되지도 않았다. 독일은 전후에 민족끼리 전쟁하지 않았고, 분단 시기에도 상호간 접촉과 교류, 왕래와 이주가 가능했다. 정치·경제적, 사회·문화·역사적 차이도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헌법 4조에 명확히 규정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을 받아들인다면, 독일통일사례를 본받아야 한다. 동독 주민이 자발적 의지와 결단으로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freiheitliche demokratische Grundordnung)'인 서독 체제로 '편입(Beitritt)'하여 '평화적으로' 하나의 독일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 동서독은 우리의 공식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상정하는 3단계 통일(남북화해협력 → 남북연합 → 통일) 가운데 2단계(연합)와 3단계(통일)를 불과 7개월(1990년 3월 18일 동독의 마지막 총선으로 구성된 마지막 정부와 서독 정부의 협상 → 10월 3일 통일) 만에 속전속결로 달성했다. 서독 정부는 빛나는 통일외교를 통해 전승 4국의 동의도 이끌었다.
우리와 독일 간에 차이가 아무리 크더라도, 역사가 완전히 동일하게 반복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북한이 독일식 통일을 거부하고 많은 대비책을 강구했다 하더라도 독일통일은 우리의 헌법과 공식통일방안에 준한다. 독일통일사례를 연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이 우리의 통일에 어떠한 법적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하더라도 그들은 우리의 분단과 통일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엄연한 현실이다. 서독의 통일외교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 통일의 원동력은 누구인가?
자유민주적 체제로 평화통일의 길을 걸은 동독 주민과 마찬가지로 북한 주민이 한반도 통일의 주동력이다. 우리가 아무리 통일을 소망하고 외쳐도, 우리 사회를 국민소득 1인당 100만달러의 지상낙원으로 만들어도, 북한 주민이 우리와 함께하기를, 우리 체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통일은 불가능하다.
우리 사회를 자유와 민주, 인권과 복지가 더욱 높아지는 체제로 만들면서, 함께하고자 하는 우리의 마음을 북한 주민에게 전하는 '통일 준비'가 우리의 과제이다. '통일'은 북한 주민이 눈과 귀를 열어 우리 사회를 보고 듣고 느끼고, 그들 체제의 실상을 깨달아, 우리와 함께하려고 우리 체제를 받아들일 때 이루어진다.
이를 위해 북한 주민에게 대한민국이란 희망을 심어주고, 동포로서 우리의 마음을 전해야 한다. 식량난에 고통을 겪는 북한 주민에게 지원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지원된 식량을 북한 주민이 아니라 인민군이 먹을 것이다, 권력층이 빼돌릴 것이라 우려하여 지원을 반대하는 시각이 있다.
한반도 평화통일의 원동력은 북한 주민이다. 여기에는 인민군과 권력층도 포함된다. 평화통일 달성 이후, 분단 기간 북한에서 비인도적이고 반인권적인 행위를 한 자들은 법정에 세워야 할 것이다. 그 외 대부분의 북한 주민, 인민군과 안전보위성 요원, 권력층도 대한민국은 국민으로서 포용해야 한다. 그들이 총을 내려놓고 우리와 함께하려 결단할 때에만 평화통일이 가능해진다.
식량, 약품 등 인도적 지원을 할 때 이들을 지원 대상에서 배제한다면, 과연 이들이 통일 대열에 동참하겠는가? 평화통일이 가능하겠는가? 북한 주민에게 최대한 도움이 되도록 대북 지원 시에 협상해야겠지만, 인민군·안전보위성·권력층의 마음도 우리가 움직여야 함을, 그들의 결단이 통일 여정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통일 이후 그들에게도 살길이 열려 있다는 사실이 그들을 움직이게 할 것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 통일을 왜 꼭 해야 하는가?
통일이 남의 일인 국민이 나날이 늘고 있다. 국가지도자적 정치인도 평화공존이 통일이라는 식으로, '분단 부역자'적 발언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일자리, 주택 등 경제문제에 신경을 쏟고 통일에는 관심이 없다는 현실을 언론·방송들이 쏟아내니, 통일에 대한 무관심은 더 당연한 듯 여겨지고 확산되고 있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분단 상황에서는 우리가, 젊은이들이 추구하는 삶의 행복, 경제문제가 결단코 해결될 수 없음이 자명해진다. 그럼에도 통일 목소리는 잦아들고, 이상한 사람 취급당하지 않으려고 입을 닫는 것이 현실이다.
토지, 노동력, 자원, 시장, 교통로가 없고, 북한의 도발이 상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국가성장이, 주택문제가, 일자리 문제가 해결되고 정치강국, 군사주권국이 될 수 있을까? 남북 이념 갈등이 우리 사회에 투영된 극단적이고 소모적인 남남갈등을 극복할 수 있을까?
비록 통일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우리의 통합과정은 독일보다 훨씬 어려울 것이다. 동독에 비해 형편없는 북한 경제로 인해 통일비용을 더 많이 쏟아 부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선조들이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듯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던 것처럼, 우리가 통합과정을 극복하면 분단 시기와 비교할 수 없는 경제강국, 정치강국, 군사주권국, 통합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어렵고 힘들다고 피할 문제가 아니다.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 길밖에 없다.
솔직히 말해 통일을 통해 얻는 혜택은 북한 주민보다 남한 주민에게 더 클 것이다. 통합의 어려운 과정을 남북한 주민 모두가 극복해야 하고, 물질적으로 남한 주민이 더 큰 부담을 안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통일을 통해 만들 수 있는 '더 큰 파이'의 '큰 쪽'을 남한 주민이 차지할 것임은 분명하다.
통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이다. 북한 주민에게 다가가서 우리의 마음을, 동포로서의 정을 보여줘야 하는 이유, 이 땅에 온 북한이탈주민을 잘 포용하고 보듬어야 하는 이유는 종국적으로 나의 인간다운 삶을 위함이다. 북한이탈주민은 통일의 전령(傳令)이고, 북한 주민은 통일의 원동력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에 의해 나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다.
자명하고 헌법적인 이 사실들에 공감대를 만드는 일이 왜 이리 힘든지!
신발 끈을 다시 여미고 백두산에서 서울, 통일의 심장으로 향한다.
■ 삶은 늦게 오는 자를 처벌한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이 8월 30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89년 10월 7일 동베를린에서 열린 동독 건국 40주년 행사에 초청을 받은 그는 전날 동베를린 중심가에 위치한 나치 독일 희생자 추모상에 헌화했다. '고르비'를 연호하는 동독 주민에 둘러싸여 운집한 기자들과 인터뷰를 가졌다.
주민들이 헝가리를 거쳐 서독으로 탈출하고, 도시들에서는 자유, 비밀투표, 개혁, 개방을 외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던 상황이었다. 동독 수뇌부는 사회주의 종주국 최고 권력자가 자신들을 지지해줄 것을 간절히 기대했다.
<사진> ▲ 1989년 10월 6일 동베를린에서 인터뷰하는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 사진=picture alliance/dpa
고르바초프는 동독 기자단이 아니라 서독 기자단을 바라보며 확신에 찬 어조로 응대했다. 위험은 삶의 적절한 시기에 반응하지 않는 데 있다. 용기를 가지고 행동한다면 사회를 움직일 수 있다. 용기를 내어 정책을 변화시킨다면 어려움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그것이 정상적인 길이다.
그날 저녁, 서베를린에서 TV로 그의 말을 접하는 순간 그는 나의 영웅이 되었다. 그의 명복을 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