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평화협력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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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 백두산으로 - 54] "평양 소고(小考) (하)" (매경프리미엄, 2022.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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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351회 작성일 22-07-11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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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 백두산으로 - 54] "평양 소고(小考) (하)" (매경프리미엄, 2022.07.11)

https://www.mk.co.kr/premium/special-report/view/2022/07/32160/

 1988년 뮌헨에서 베를린까지 한 학기를 통학했다. 열차나 히치하이킹으로 동독을 거의 8시간 가로지르는 동안, 창문이 온전한 집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유리가 깨어진 채, 비닐이나 헝겊으로 덮은 칙칙한 회색빛 집들의 연속이었다. 사회주의 제일이라는 경제 강국의 현실이었고, 북한은 어떨까 사정을 짐작해보게 했다.

밤의 동베를린은 달랐다. 웅장한 대형 건물과 동상, 기념물들이 이어지고, 아래로부터 밤하늘로 서치라이트를 곳곳에서 쏘아 올리고 횃불을 걸면 장엄한 감동이 전해온다. 혁명이 완수된 사회주의 성지(聖地)의 모습이 연출된다. 박살내고 무너뜨린 나치로부터 배웠다. 한때 전국 각지에서 뽑혀 단체로 견학 온 학생들은 밤의 동베를린에서 독일민주공화국의 신민(臣民)으로서 뿌듯함과 자부심을 느꼈다. 날마다 시간시간 겪어야 하는 일상의 고단함을 더욱 각오하게 했다.

2003년 평양의 밤은 검은 바다였다. 칠흑 같은 어두움에 밤새도록 몇 차례 오가는 차량 불빛이 전부다. 만수대 김일성 동상, 대동강변 주체사상탑의 불빛도 가물가물했다. 전후 도시 재건에서 나치, 동독을 참고했던 북한 당국이 전기 사정으로 '혁명의 수도' 평양의 절반을 선전선동에 이용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얼마나 컸을까.

김정은이 평양 정상회담을 위해 육로는 불편하니 비행기로 오라고 했다. 자신의 통치 아래 바뀐 순안국제공항과 평양의 스카이라인을 과시하고 싶었을 것이다. 현재 평양의 밤, 김정은이 자랑하고 싶게 장엄할지 자못 궁금하다.

평양 방문에 가장 들뜬 곳이 옥류관이다. 민족음식의 '으뜸료리' '조선민족료리의 대표작'으로 김일성·김정일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만개하여 모든 백성이 즐기게 되었다는 평양냉면의 본산이다. 공손하게 받아든 냉면, 먼저 맑은 육수를 쭈욱 들이켠다. 담백하고 찡하면서 고기 향이 은은하다. 면 색은 약간 짙으면서 끈적임이 있고, 고명에 양념이 들어 있다.

김일성·김정일 교시에 따르면 평양냉면은 100% 순메밀이어야 하고, 고기 육수와 동치미국 맛을 해치지 않기 위해 양념을 넣지 말아야 한다. 경제 현실의 반영인가 여기면서도 지금껏 맛본 평양냉면 가운데 단연 최고다. 바로 매료되면서 쟁반냉면을 추가하여 회포를 푼다.

금강산 관광이 본격화되면서 관광지에 옥류관이 들어섰다. 모든 재료를 평양 옥류관에서 가져와 조리한다는데 맛에 차이가 있다. 물은 가져오지 못하니 그게 원인인가 하며 평양을 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랬다.

평양 방문이 어렵게 되자 중국, 몽골, 베트남 등지의 북한 식당을 찾아 평양냉면을 주문한다. 면이 짙은 갈색에 끈적임이 대단하다. 농마가 메밀을 덮었다. 양념도 푸짐하게 들어 담백한 육수 맛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단둥의 압록강 철교에 바로 이웃한 북한 식당 세 곳, 평양냉면이 모두 달랐다. 고명 형태와 종류는 물론이고 육수 맛도 다르다. 서로 경쟁한단다.


<사진> ▲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나온 평양냉면

2018년 판문점 정상회담에 김정은이 평양냉면을 대접하여 남쪽에 평양냉면이 재조명되고 붐이 일었다. 유명 평양냉면집 가운데 메밀 100%를 쓰는 곳도 있고, 양념 없이 육수도 담백하다. 김일성·김정일의 평양냉면 교시가 오히려 남쪽에서 반영되고 있다. 음식 문화도 경제가 뒷받침해야 발전한다. 어려운 삶 속에서도 평양냉면이 북한에서 사랑받고 명맥을 이어가고, 남쪽에서도 실향민을 넘어 세대를 이어가며 연구되고 확산되는 것이 평양냉면이다. 남북의 평양냉면이 언젠가 새로운 평양냉면 문화를 창조할 것이다.

만경대학생소년궁전은 영재들의 교육장이다. 예술·체육 분야 인재들을 집중 양성하는 곳이자, 북한 체제의 우월성을 대외적으로 선전하는 장소다. 2000년 평양을 찾은 김대중 대통령도 이곳을 방문하여, 당시 북한의 한석봉이라는 초등학생 주준호로부터 붓글씨 '조국통일'을 선물로 받았다.

2003년 중학생이 된 그가 궁전 서예 소조실에서 기예를 선보이고 있었다. 어렵사리 '조국통일'을 선물로 받고, 다음 방문에서 '우리는 하나'를 더 소장하게 되었다. 평양미대를 나와 만수대창작사에서 혹은 대학 강단에서 활동하고 있으려나, 재회를 고대한다.


<사진> ▲ 2000년 6월 14일 만경대학생소년궁전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 내외 앞에서 ‘조국통일’을 쓰고 있는 주준호 / 사진=공동취재단

<사진> ▲ 2003년 3월 중학생이 된 주준호 / 사진=손기웅

사람이 살고 있는 평양이지만, 당 일꾼들은 임무에 치열했다. 외세 배격, 주한 미군 철수, 민족 대단결 삼단논법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50년 전 '7·4 남북공동성명'에서 발표된 통일 3대 원칙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을 활용한다. 항상 복수인 안내자들이 서로를 감시하고, 당성이 누가 강하나 경쟁하는 것이 단번에 느껴진다.

절대 왕조적 독재체제를 군신유의(君臣有義), 부자유친(父子有親),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의 윤리, 미덕으로 포장한 통치방식의 결과이긴 하지만 북한 사람들에 깊숙이 내재화된 행위양식이 재미있다. 평양에서, 제3국에서 북한과 여러 만남을 거치면서 가진 노하우다.

북한 대표단과 대화할 때 누가 실세인지 확인하는 방법이 선물이다. 준비한 선물을 공식 단장에게 건넬 때 받으며 눈길을 주는 사람이 실세다. 그냥 받으면 그가 실세고. 대화를 부드럽게 풀기 위해 사석에서 저는 몇 년생 몇 살입니다 밝히면 상대들도 거의 대부분 나이를 말한다. 그때부터 지위를 막론하고 나이가 많으면 형님, 적으면 아우님으로 부르겠다고 공손히 말하면 순순히 따른다.

다른 하나는 술 시합이다. 시합에 진 북측이 다음날 다른 사람을 보내 보드카를 맥주잔에 가득 연거푸 두 잔을 들이켜고 건넬 때 두 말 않고 "졌습니다" 했던 일화도 있다. 이후 '독주 버티기'에서 '맥주 빨리 마시기'로 종목을 바꾸었다.

공식 대화에서 북측은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는다. 자존심 때문이지만, 누가 무엇을 말하는지 서로가 보고 있기 때문이다. 회의 마지막 전날 구체적인 무언가 내용이 있어야 서로가 도움이 되지 않느냐, 보고하기도 좋고 하면서 칠판에, 그냥 종이에 분야별로 표를 그려준다. 내일까지 적어달라고 하면 반드시 적어준다.


<사진> ▲ 남북회의에서 북측이 작성한 요청사항 / 사진=손기웅

평양냉면과 더불어 또 하나 평양 상징이 수양버들이다. 보통강 나부끼는 버들 아래 듬듬이 앉은 남녀가 얘기꽃을 피우고, 강변을 달리는 사람, 강 안에 그물을 던지는 쪽배의 어부, 한가로운 오후의 평양이다. 모두 연출이라는데 확인할 수 없다. 옥류관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 몇 달 뒤 다시 찾아 찍은 기념사진에 보이는 동일한, 지나가는 행인 평양시민은 우연이겠다.

부위별 코스로 나오는 단고기, 눈으로 즐기고 슬쩍 자리를 떠 혼자 거리에 나섰다. 당구 간판을 보고 들어가니, 똑같다.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 공 부딪히는 소리. 몇 분 후 "아니 왜 구경만 하십니까, 함께 치시지요" 하며 안내원이 슬며시 등장한다. "선생님, 우리는 이렇게 자유롭게 선생님을 놔두는데, 왜 남측은 우리가 내려가면 꼭꼭 가두어두는가요?" 단수 높은 통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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