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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웅의 통일문] "갑자기 초췌한 모습으로 등장한 김정은...다시 제기된 김정은 代役" (최보식의 언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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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865회 작성일 22-02-03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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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웅의 통일문] "갑자기 초췌한 모습으로 등장한 김정은...다시 제기된 김정은 代役" (최보식의 언론: 2021.12.30)

https://www.bosik.kr/news/articleView.html?idxno=4741

김정은 대역(代役)이 있다는 주장이 심심찮게 제기된다. 국정원까지 나서서 사실 여부를 확인해줄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

얼마 전 김정은 위원장이 갑자기 초췌한 모습으로 등장하자 다시 주장에 힘이 실리기도 했다. 경제난 속에서 초조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그에게 건재한 모습을 연출할 대역이 필요한 순간이기도 하다.

2019년 통일된 독일이 다시 들썩였다. 40년 분단 동안 별의별 일들이 일어나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으리라 여겼던 상황에서 새로운 충격이었다. 다행히도 ‘해피 엔드’였다.

독일방송 3sat을 통해 알려진 ‘동베를린의 도플갱어(Der Doppelgänger von Ost-Berlin)’란 그야말로 드라마 같은 기록영화다. 도플갱어, 어떤 사람과 똑같이 생긴 다른 사람의 실제 이야기다.

<사진> 2019년 10월 1일 방영된 ‘동베를린의 도플갱어’/ Roger Grein/Zdf/dpa

1988년 19살의 미하엘 슈나이더(Michael Schneider)는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결단을 단 한 순간에 내렸다. 결정은 짧았지만 그에겐 이미 오랜 소망이었다.

동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에 위치한 ‘베를린시호텔(Hotel Stadt Berlin)’의 접수대(reception)에서 일하던 중이었다. 당시 외국인을 만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호텔 중 하나였던 그 곳에서 미하엘은 여느 날처럼 손님들의 신분증을 검사를 하고 있었다.

덴마크 사람 모턴 뱅크 미켈슨(Morten Bank Mikkelsen)에겐 이번 동독 여행이 그의 처음 사회주의국가 방문이었다. 동베를린에서 열린 댄스 경연대회에 참가하러 온 모턴은 설레임과 약간의 긴장감을 느끼며 베를린시호텔에 들어섰다.

두 살 어린 모턴이 미하엘에게 여권을 제시하는 순간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모턴과 여권 속 그의 사진이 미하엘에겐 그의 도플갱어였다. 최소한 형제처럼 보였고, ‘할 수 있겠다’고 속으로 외쳤다.


<사진> 미하엘과 모턴의 십대 때 모습 / Story House

호텔에 두어야 할 모턴의 여권을 주머니에 넣은 채 그는 집으로 달려갔다. 재빨리 가방을 챙긴 그는 부모님께 작별 인사를 할 수 없었다. 부모님을 공모자로 만들어서는 안 되었다.

사실 미하엘은 서독 방문을 원했고 동독당국은 이미 두 번이나 거부한 터였다. 음악가로서 여행을 많이 하는 아버지로부터 이어진 방랑벽 유전자도 있었다. 얼마 전 동베를린에서 열렸던 영국의 뉴 웨이브 밴드 ‘디페쉬 모드(Depeche Mode)’의 열정적 무대에서 자유의 향기를 온 몸으로 받았던 그였다. 동독은 그에게 너무나 협소했고, 자유분방하고 싶었던 십대의 그에겐 감옥이었다.

덴마크인 모턴이 된 미하엘은 서독행 기차에 올랐다. 운명의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Bahnhof Friedrichstraße)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분단 시기 동서베를린의 접경통과역이었던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은 동베를린에 위치했다. 서독에서 혹은 서베를린에서 출발하여 동베를린으로 가거나, 동베를린을 거쳐 동부 유럽으로 가려는 여행객은 여기서 삼엄한 검사를 받아야했다. 반대행도 마찬가지였다.

동독 주민들은 거대하고 음산한, 수많은 애환이 일어났던 이곳을 ‘눈물의 궁전(Tränenpalast)’이라 불렀다. 유학 시절 서독에서 서베를린을 처음 방문했을 때 그 전역(前驛) 서베를린의 ‘동물원역(Bahnhof Zoologischer Garten)’에서 내려야 하는 것을 모르고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까지 왔다 낭패를 겪은 기억이 새롭다.

덜덜 떨리는 무릎을 애써 누르며 앉아 있는 미하엘에게 비밀경찰 슈타지 요원이 다가왔다. 여권을 제시한 그에게 하늘이 도우사 검사원은 독일말로 말을 걸어왔다. 덴마크어를 전혀 모르는 그는 떠듬거리며 독일어로 대응했다.

넘어갔다. 기차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미하엘은 ‘이제 됐다, 자유다’를 마음속으로 울부짖었다. 곧 서베를린의 전철역이 눈에 보이자 눈물과 콧물의 범벅으로 울 수밖에 없었다.

서베를린에 도착하자 미하엘은 따뜻하게 환영받았고, 그는 경찰에 덴마크 여권을 건넸다. 덴마크 도플갱어 모턴은 강도당했다고 여겼던 여권을 여러 경로를 거쳐 되찾았고, 동독을 떠날 수 있었다.

새 삶의 둥지, 자유의 서독은 미하엘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가족에게 연락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슈타지가 어떻게든 그를 다시 데려가거나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우려여서였다.

자유의 땅에서 슈나더에게 새로운 고통이 시작되었다. 언제 다시 부모님과 함께 할 수 있을까? 하늘이 다시 도우사 그에게 행운이 닥쳤다. 이듬해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되었다.

미하엘과 모턴은 30년 동안 만나지도 연락도 하지 않았다. 모턴은 독일 도플갱어가 있었다는 것도, 의도치 않게 그가 한 사람의 생을 바꾸고 자유를 주었다는 사실도 전혀 몰랐다.

그들의 도플갱어 이야기를 베를린장벽붕괴 30주년, 독일통일 29주년을 기념하여 3sat이 방영을 결정하자 기회가 왔다. 촬영스튜디오에서 40대 후반의 중년사업가 두 사람이 처음으로 만났다. 완전히 닮은 것은 아니지만, 이어주는 무언가가 있음을 두 사람은 느낄 수 있었다.


<사진> 처음으로 만난 미하엘과 모턴, 누가 누구일까 / ZDF

분단 시기 동독의 슈타지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여권을 위조했다. 동독을 여행하거나 통과하는 서독인의 여권을 어떻게든 빼돌려 여권 상 나이와 사진과 비슷한 스파이 여권으로 만들었다. 서독 연방의원의 신분도 이렇게 도용당했음이 통일 이후에 밝혀졌다.

통일 31년이 흘러도 알려지지 않은 분단 이야기가 독일에선 여전히 존재한다. 분단 76년이 지나간다. 얼마나 많은 애환과 고통이 있으며, 그것이 언제 어떻게 알려질지 잊혀져갈지, 시간이 흐른다.

북한 주민 여러분, ‘평화는 투쟁으로 쟁취하여야 한다’고 배우고 계시죠. ‘자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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