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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 백두산으로-18] "별이 된 한스와 미하엘" (매일경제, 2021.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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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461회 작성일 21-11-04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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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 백두산으로-18] "별이 된 한스와 미하엘" (매일경제, 2021.11.01)

https://www.mk.co.kr/premium/special-report/view/2021/11/31004/

다음 목적지 프리스터카테(Priesterkate)로 향하는 마음은 무거웠다.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한 곳이기 때문이다. 2021년 10월 다시 그곳으로 향하며 동서독 접경선이었던 엘베강을 탐사하던 중 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곳에 서고 말았다. 한스게오르크 레메의 죽음이다.

1974년 8월 19일 늦은 밤, 21살의 한스는 엘베강을 헤엄쳐 서독으로 탈출을 시도했다. 순찰 중이던 동독 경비정이 이를 발견했다. 그가 다시 동쪽으로 돌아오도록 유도한 것이 아니라, 함정으로 그를 그대로 덮쳐 밀어버렸다. 한스는 거세게 돌아가는 스크루에 치명상을 입었고, 시신은 며칠 후 인양되었다.

통일 후 지방법원은 함정을 몰았던 선장을 법정에 세웠으나, 살인 의도를 증명할 수 없었다. 그는 석방되었다. 한스가 강에 뛰어들기 전 눈에 담았던 서쪽의 엘베강변에 그를 기리는 추모판이 세워졌다. 옆 작은 공간은 '한스게오르크 레메 광장'으로 이름 지어졌다.


▲ 강변 추모판의 앳된 한스의 모습이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한다. 목숨을 걸었던 엘베강은 분단선을 잊은 채 한가로이 흐르고 있다. / 사진=손기웅

동독은 탈출자를 막기 위해 장벽을 높이, 2중 3중으로 세웠다. 그러나 자유에의 의지가 끊이지 않자 1970년 장벽의 동쪽 면에 '산탄지뢰 70형(Splittermine Modell-70)', 이른바 '자동발사장치 70형(Selbstschussanlage Modell-70: SM-70)'을 설치했다. 접경선 447㎞에 걸쳐 7만1000개 이상의 살인기계가 생명을 노렸다.

'죽음의 자동기계(Todesautomat)'라 불렸던 SM-70의 촉발선을 건드리면 전기가 흐르고 약 100g의 TNT가 폭발하면서 110여 개의 쇳조각 탄환이 날아간다. 사정거리 120m, 유효사거리 10m인 살인기계를 동독은 철조망 장벽에 30m 간격으로 삼중으로 설치하여 '공화국 탈출자'를 벌집이 되게 했다. 빠져나가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동독은 살인 장치는 물론이고 사살 사망자를 인정도 공개도 하지 않았다.


▲ SM-70의 작동원리: 탈출 시도자가 그림ⓐ의 선을 움직이게 되면 그림ⓑ가 뒤쪽으로 밀리면서 그림ⓒ부분이 전기가 흐르는 그림ⓓ와 ⓔ에 접촉하게 된다. 그림ⓖ의 장약이 폭발하면서 그림ⓕ의 탄환이 발사된다.
30m 간격, 삼중으로 설치된 SM-70의 촉발선 위와 아래로 새나 동물이 촉발선에 앉지 못하도록 방지하는 선이 보인다. / 사진=손기웅

별이 된 한스와 미하엘

프리스터카테는 서독의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에 속하며, 동독의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를 마주 보는 접경지역의 조그만 마을회관이다. 1945년 분단의 직격탄을 맞은 마을 사람들은 이곳에 모여 아픔을 달래고 위안을 받았다. 삼각형 모양의 이끼가 덮인 지붕의 목조건물은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모습이다. 건물 2층이 분단과 접경지역의 상황을 보여주는 작은 박물관으로 꾸며졌다. 그 한편에 미하엘 가르텐쉬래거의 슬픈 사연이 담겨 있다.


▲ 프리스터카테 접경박물관 / 사진=손기웅

1944년 동베를린 근교에서 태어난 미하엘은 동독이 1961년 베를린장벽을 세우고 전 접경지역을 요새화하자 항거하였다. 17세의 나이에 그는 친구들과 함께 반체제 선동, 체제 전복, 방화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혔다. 정치범이 된 그에게 검찰 구형은 사형이었다.

독방에서 10년간 외로움과 병과 영양실조로 고통을 받던 그는 1971년 '자유거래(Freikauf)'를 통해 서독으로 와 고대하던 자유를 찾았다. 동독은 대가로 4만마르크를 챙겼다.

함부르크에서 새 삶을 시작했지만 그는 동쪽의 동포를 잊지 않았다. 탈출자 지원 단체에 가담하여 31명의 탈출을 도와주었고, 6명을 직접 서독으로 데려왔다. 동독 독재 체제에 대한 항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비인간적인 SM-70을 직접 제거하기로 결심했다.

1976년 미하엘은 접경선에 접근하여 동독 쪽으로 향하여 설치된 살인 장치의 촉발선과 전기접전단자 사이의 선을 절단하여 SM-70을 해체하는 데 성공했다. 두 번째도 성공이었고, 시사주간지 '슈피겔(Spiegel)'이 이를 보도하였다.

살인기계 설치를 더 이상 부인할 수 없게 된 동독은 4월 24일 비밀경찰 '슈타지(Stasi)' 요원 29명으로 특공대를 조직하였다. 4월 30일 프리스터카테 인근 접경선에서 세 번째 해체를 시도하던 미하엘을 사살하였다. 동독은 격려금을 수여하고, 살인 장치에는 상자형 곽을 씌워 해체를 방지했다.


▲ 미하엘이 1961년 9월 동독에서 노동자계급의 적, 당과 정부의 적으로 유죄판결을 받을 당시 법정 사진(위 중앙), 그의 얼굴 사진(위 우측), 서독으로 건너와 활동할 당시 사망 직전인 1976년 4월 접경선에서 동독지역을 보는 사진(아래 좌측), 사살된 그의 시신(중앙), 그리고 그를 기리는 십자가 사진이다. / 사진=손기웅

▲ 미하엘의 해체 시도 후 SM-70에 상자형 곽이 덮였다. / 사진=손기웅

미하엘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다. 사건을 계기로 살인자동장치의 작동 원리와 해체 방법이 언론을 통해 상세히 알려지자 이를 이용하여 격발을 피한 탈출이 멈추지 않았다.

별이 된 한스와 미하엘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다 사라진 이들을 하늘에서 만나고 있을까. 북한 주민의 인권과 자유가 외면받고 있는 2021년의 한반도를 하늘에서 지켜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무슨 수를 쓰더라도 탈북자를 잡아오라는 김정은의 특명이 떨어지고, 중국 공안의 탈북자 체포 소식이 귀를 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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