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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 백두산으로 - 20] "마을공화국이 된 뤼터베르크" (매일경제: 2021.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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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339회 작성일 22-02-03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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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 백두산으로 - 20] "마을공화국이 된 뤼터베르크" (매일경제: 2021.11.15)

https://www.mk.co.kr/premium/special-report/view/2021/11/31089/

엘베강 접경 동독의 작은 마을 뤼터베르크(Rüterberg)가 '공화국(Republik)'이 되었다.

뤼터베르크는 1945년 전쟁이 끝난 후 영국군이 점령하였다. 이후 영토 교환을 통해 소련군이 주둔하였다. 동독이 건국하면서 메크렌부르크-포어폼메른주에 속하게 되어 엘베강을 사이에 두고 서독의 니더작센주 란트자츠(Landsatz)와 마주 보는 접경지역이 되었다.

1952년부터 차단지대가 설정되고, 통행증 없이는 마을을 출입할 수 없었다. 마을 앞 엘베강을 따라서 철조망이 쳐졌고, 접경지역 이주 정책에 의해 많은 주민이 강압적으로 토지를 몰수당하고 고향을 떠나야 했다. 1961년 약 300명이었던 마을 주민이 1989년에는 반으로 줄었다.

1966년 동서독 사이에 영토 분쟁이 일어났다. 서독은 뤼터베르크 앞 엘베강 수면 전체에 대한 주권을 주장한 반면, 동독은 강의 중간선이 경계선이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통일이 되기까지 분단선 경계 획정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아래 그림이 동서독이 접경선 획정에 합의하지 못한, 좌측 끝 라우엔부르크(Lauenburg)에서 우측 끝 쉬나켄부르크(Schnackenburg) 엘베강 구간이다. 엘베강 선 아래가 서독, 위가 동독이다. 작은 빗금 친 지역 피어 베르더(Vier Werder)와 칼텐호퍼 피어엑(Kaltenhofer Viereck)이 소련군 점령지였다가 영국군 점령지로, 중간 빗금 친 큰 부분 노이하우저 일대(Neuhauser Streifen)와 우측 끝 뤼트켄비셔 비이젠(Lütkenwischer Wiesen)이 영국군 점령지에서 소련군 점령지로 바뀌었다. 뤼터베르크는 중간 우측 되미츠(Dömitz) 좌측 노이하우저 일대에 위치한다.

▲ 그림=Spiegel

▲ 뤼터베르크에서 바라본 미획정 엘베강과 건너편 서독 / 사진=손기웅

이 갈등의 여파로 마을 앞 강변과 마을 주변에는 두 번째 철조망이 세워지고, 뤼터베르크는 동독 자체로부터도 격리된 지역이 되고 말았다. 엄중한 감시가 이루어지는 통문을 통해 통행증을 제시해야 겨우 출입이 허용되었다. 그마저도 밤 11시부터 새벽 5시까지는 모든 출입이 차단되었고, 외부인의 방문은 일절 허용되지 않았다.

원래 뤼터베르크는 벽돌 공장과 목재 공장으로 활력이 넘쳤으나, 1971년 접경지역 안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문을 닫아야 했다. 공장들은 엘베강 감시를 위해 지표면과 같은 높이로 부서져 사라졌다.

▲ 흔적도 없이 사라진 뤼터베르크 벽돌공장 / 사진=손기웅

뤼터베르크가 '마을공화국(Dorfrepublik)'이 된 것은 격리 통제된 상황에 대한 반항의 결과였다. 창살 없는 감옥 같은 삶을 살아야 했던 마을의 재단사 한스 라젠베르거(Hans Rasenberger)는 스위스에서 자체적으로 마을을 운영하는 마을공동체 사례에 관심을 가졌다. 1988년 서독 친척을 방문하는 길에 스위스를 직접 찾아 학습하였다.

라젠베르거는 1989년 10월 24일 마을총회를 소집했다. 물론 국가안보성 지침에 따라 사전 신청서를 제출했다. 총회는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기 하루 전인 1989년 11월 8일로 승인되었다. 마을회관에 마을 주민 90명 외에 지역행정 대표, 국경수비대 장교, 인민경찰청 책임자 등이 모였다. 라젠베르거는 특수한 환경에 놓인 마을을 앞으로 동독 정부의 규정에 따라서가 아니라 자치적으로 운영하자고 제안했다.

주민들은 만장일치로 마을을 공화국으로 운영하는 데 찬성했다. 하루 뒤 베를린장벽이 무너지자 주민들은 즉시 뤼터베르크가 독립적인 마을공화국임을 선포했다. 다음날 10일 자유로운 출입이 마침내 가능해졌다.

통일된 후 1991년 7월 14일 뤼터베르크는 메크렌부르크-포어폼메른주의 승인을 얻어 마을 표시로 뤼터베르크와 함께 '마을공화국 1961-1989'를 쓸 수 있는 권리를 획득했다. 2001년부터는 완벽히 통제된 삶을 살아야 했던 1967년을 넣어 '마을공화국 1967-1989'로 변경하여 오늘날 모든 마을 표지판에 사용하고 있다.

▲ 마을공화국 뤼터베르크 표지판 / 사진=WDR, 손기웅

▲ 강변 나무 탁자, 이제는 너머로 대화도 커피 향기도 나눌 수 있다. / 사진=강동완

▲ 마을공화국 뤼터베르크 안내판, 스위스를 참고하여 공화국으로 만든 사연과 일대의 그뤼네스 반트를 소개하고 있다. / 사진=손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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