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웅의 통일토크] "김정은 짜증이 묻어나는 ‘장벽쇼’... 종말 재촉하는 발버둥에 불과" (뉴스퀘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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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603회 작성일 24-06-17 21:03본문
<사진> 정부가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결정한 지난 9일 경기도 파주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북한군 초소에서 북한군 병사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사진> 베를린 장벽 10주년에 동독이 “반파시스트 방벽 10년, 평화와 사회주의의 안전한 보호 10년”이라며 발행한 초일봉피(初日封皮) [사진=손기웅]
[손기웅의 통일토크] "김정은 짜증이 묻어나는 ‘장벽쇼’... 종말 재촉하는 발버둥에 불과" (뉴스퀘스트, 2024.06.17)
https://www.newsque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5520
북한이 군사분계선(MDL) 북쪽 1km 지점을 따라 콘크리트 벽을 세우는 듯한 모습이 포착됐다고 한다. DMZ 북방한계선과 MDL 사이에 새로 벽을 만드는 것이다. 작업은 동쪽과 서쪽 중간 지점에서 동시에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콘크리트 장벽일지, 차량 방벽일지 지켜봐야 하겠지만, 자연스레 베를린 장벽이 떠오른다.
1949년 10월 7일 공산정권을 수립하자마자 동독은 인권 탄압, 사유재산 몰수, 일당 독재체제 구축, 강제 이주 등을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수많은 사람이 서독으로 넘어왔다. 1952년까지 67만5000명에 달했다.
가만있을 공산당이 아니었다. 1952년 5월 26일부터 약 1천4백㎞에 이르는 동서독 접경선에 철조망, 감시탑 등 방비시설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폭 5㎞의 차단지역, 폭 500m의 보호지대, 폭 10m의 통제지대를 설정하고, 출입을 엄격히 제한했다. ‘의심분자들’은 배후지역으로 강제 이주 당했다.
‘자유 탈출’은 멈추지 않았다. 1961년까지 당시 동독 인구의 1/6인 270만 명이 서독에서 자유를 되찾았다.
대부분은 동베를린 시민이건 타 지역 동독 주민이건 동베를린에서 서베를린으로의 탈출이었다. 동·서베를린 간 왕래가 통제되었으나,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그래도 완전히 닫히지 않았고, 상대적으로 용이했기 때문이다.
공산정권은 결단을 내렸다. 1961년 8월 13일 새벽, 동서베를린 경계선에 기습적으로 아예 벽을 세워 막아버렸다. 장벽 자기쪽 앞에 철조망장벽도 추가로 만들었다. 탐조등·도로차단기·벙커·감시탑·차량방벽도 구축했다.
다만 동서독 전 접경선에 구축된 지뢰밭과 장벽 자기쪽 면에 장착된 ‘자동사살장치’는 만들지 않았다. 시가지 특성상 쉽게 식별될 수 있는 살인장치를 보란 듯 설치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베를린 장벽은 시멘트 블록에서 콘크리트로 바뀌었다. 3.4m 높이의 콘크리트가 얼마나 단단했는지 1989년 11월 9일 장벽이 무너진 직후 필자는 5백원 동전 굵기의 정으로 부수려했으나 작은 파편만 튈뿐이었다. 발 빠른 장사꾼들은 석탄 캐는 착암기를 동원해 손바닥 이상의 장벽 조각을 캐내 팔았다.
삼엄하게 경비·통제되는 167.8㎞ 베를린 장벽의 건설과 지속적인 보강, 그리고 28년에 걸친 유지·관리는 1천4백㎞ 동서독 접경선 방비시설과 더불어 동독에 막대한 경제적 부담이 되었다. 1961년부터 1964년까지 동독이 전 접경선 통제를 위해 지출한 총 18억2천2백만 동독마르크(M) 중 4억M(22%)가 베를린 장벽에 사용되었다.
베를린 장벽 10주년에 동독이 “반파시스트 방벽 10년, 평화와 사회주의의 안전한 보호 10년”이라며 발행한 초일봉피(初日封皮) [사진=손기웅]
북한의 움직임을 아직 속단할 수 없다. 콘크리트 장벽이라 할지라도 코로나 역병이나 남쪽 주민 월북 차단용은 아닐 것이다. 대 전차 방벽이라 할지라도 대비해야 할 긴급성은 없다.
그러나 무엇이건 건설이 DMZ 동쪽에서 서쪽 끝 248㎞ 전역에 진행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럴 형편이 되지 않는 김정은이다.
‘불꽃쇼’를 잇는 ‘장벽쇼’일 가능성이 크다. 오물풍선과 더불어 김정은 짜증의 또 하나 표현이다. DMZ 내 초소 복원과 중화기 배치, 금강산과 개성공단 내 우리 자산 파괴와 탈취, 남북 통로에 지뢰 매설, 전신주와 철목 제거와 마찬가지다.
어떻게든 한반도 상황의 부정적 변화가 윤석열 정부 때문임을 각인시키고자 한다. 남남 갈등을 일으키고, 윤 정부를 흔들려는 시도다.
동시에 윤 정부로부터 강력한 대응을 유도해 도발의 빌미로 삼으려는 수작이다. 오물풍선에 국민 94%가 대북 확성기 재개를 찬성(최근 동아일보 여론조사 결과)해도 비례성의 원칙으로 의연하게 대응하는 윤 정부가 참으로 미울 것이다.
장벽이건 방벽이건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의 실상을, 북한 주민과 함께 하려는 우리 마음을, 북한 주민이 보고 듣고 느끼지 못하게 완전히 틀어막지는 못한다는 사실이다. 장벽과 오물풍선, 김정은의 종말을 재촉하는 신음소리로 들린다.
<사진> 베를린 장벽 10주년에 동독이 “반파시스트 방벽 10년, 평화와 사회주의의 안전한 보호 10년”이라며 발행한 초일봉피(初日封皮) [사진=손기웅]
[손기웅의 통일토크] "김정은 짜증이 묻어나는 ‘장벽쇼’... 종말 재촉하는 발버둥에 불과" (뉴스퀘스트, 2024.06.17)
https://www.newsque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5520
북한이 군사분계선(MDL) 북쪽 1km 지점을 따라 콘크리트 벽을 세우는 듯한 모습이 포착됐다고 한다. DMZ 북방한계선과 MDL 사이에 새로 벽을 만드는 것이다. 작업은 동쪽과 서쪽 중간 지점에서 동시에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콘크리트 장벽일지, 차량 방벽일지 지켜봐야 하겠지만, 자연스레 베를린 장벽이 떠오른다.
1949년 10월 7일 공산정권을 수립하자마자 동독은 인권 탄압, 사유재산 몰수, 일당 독재체제 구축, 강제 이주 등을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수많은 사람이 서독으로 넘어왔다. 1952년까지 67만5000명에 달했다.
가만있을 공산당이 아니었다. 1952년 5월 26일부터 약 1천4백㎞에 이르는 동서독 접경선에 철조망, 감시탑 등 방비시설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폭 5㎞의 차단지역, 폭 500m의 보호지대, 폭 10m의 통제지대를 설정하고, 출입을 엄격히 제한했다. ‘의심분자들’은 배후지역으로 강제 이주 당했다.
‘자유 탈출’은 멈추지 않았다. 1961년까지 당시 동독 인구의 1/6인 270만 명이 서독에서 자유를 되찾았다.
대부분은 동베를린 시민이건 타 지역 동독 주민이건 동베를린에서 서베를린으로의 탈출이었다. 동·서베를린 간 왕래가 통제되었으나,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그래도 완전히 닫히지 않았고, 상대적으로 용이했기 때문이다.
공산정권은 결단을 내렸다. 1961년 8월 13일 새벽, 동서베를린 경계선에 기습적으로 아예 벽을 세워 막아버렸다. 장벽 자기쪽 앞에 철조망장벽도 추가로 만들었다. 탐조등·도로차단기·벙커·감시탑·차량방벽도 구축했다.
다만 동서독 전 접경선에 구축된 지뢰밭과 장벽 자기쪽 면에 장착된 ‘자동사살장치’는 만들지 않았다. 시가지 특성상 쉽게 식별될 수 있는 살인장치를 보란 듯 설치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베를린 장벽은 시멘트 블록에서 콘크리트로 바뀌었다. 3.4m 높이의 콘크리트가 얼마나 단단했는지 1989년 11월 9일 장벽이 무너진 직후 필자는 5백원 동전 굵기의 정으로 부수려했으나 작은 파편만 튈뿐이었다. 발 빠른 장사꾼들은 석탄 캐는 착암기를 동원해 손바닥 이상의 장벽 조각을 캐내 팔았다.
삼엄하게 경비·통제되는 167.8㎞ 베를린 장벽의 건설과 지속적인 보강, 그리고 28년에 걸친 유지·관리는 1천4백㎞ 동서독 접경선 방비시설과 더불어 동독에 막대한 경제적 부담이 되었다. 1961년부터 1964년까지 동독이 전 접경선 통제를 위해 지출한 총 18억2천2백만 동독마르크(M) 중 4억M(22%)가 베를린 장벽에 사용되었다.
베를린 장벽 10주년에 동독이 “반파시스트 방벽 10년, 평화와 사회주의의 안전한 보호 10년”이라며 발행한 초일봉피(初日封皮) [사진=손기웅]
북한의 움직임을 아직 속단할 수 없다. 콘크리트 장벽이라 할지라도 코로나 역병이나 남쪽 주민 월북 차단용은 아닐 것이다. 대 전차 방벽이라 할지라도 대비해야 할 긴급성은 없다.
그러나 무엇이건 건설이 DMZ 동쪽에서 서쪽 끝 248㎞ 전역에 진행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럴 형편이 되지 않는 김정은이다.
‘불꽃쇼’를 잇는 ‘장벽쇼’일 가능성이 크다. 오물풍선과 더불어 김정은 짜증의 또 하나 표현이다. DMZ 내 초소 복원과 중화기 배치, 금강산과 개성공단 내 우리 자산 파괴와 탈취, 남북 통로에 지뢰 매설, 전신주와 철목 제거와 마찬가지다.
어떻게든 한반도 상황의 부정적 변화가 윤석열 정부 때문임을 각인시키고자 한다. 남남 갈등을 일으키고, 윤 정부를 흔들려는 시도다.
동시에 윤 정부로부터 강력한 대응을 유도해 도발의 빌미로 삼으려는 수작이다. 오물풍선에 국민 94%가 대북 확성기 재개를 찬성(최근 동아일보 여론조사 결과)해도 비례성의 원칙으로 의연하게 대응하는 윤 정부가 참으로 미울 것이다.
장벽이건 방벽이건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의 실상을, 북한 주민과 함께 하려는 우리 마음을, 북한 주민이 보고 듣고 느끼지 못하게 완전히 틀어막지는 못한다는 사실이다. 장벽과 오물풍선, 김정은의 종말을 재촉하는 신음소리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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